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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본문
1. 들어가는 말

이 책은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관찰한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대해 고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독일어 원판의 제목은 아래와 같다.
…Trotzdem Ja Zum Leben Sagen: Ein Psychologe erlebt das Konzentrationslager
Nevertheless, Say "Yes" to Life: A Psychologist Experiences the Concentration Camp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 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심리학자의 강제수용소 체험에서
반면 영문판의 제목은,
Man's Search for Meaning: An Introduction to
Logotherapy
의미를 찾는 사람: 로고테라피에 대한 입문
위처럼 다소 간결하게 번역되었으며,
한글판의 제목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로 다소 문학적인 뉘앙스로 번역되었다.
나는 평소 삶에는 의미가 없으며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는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철학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아우슈비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를 강조하는 <의미치료>를 고안해 낸 프랭클의 책이 궁금하여 읽게 되었다.
2. 책의 구성
<죽음의 수용소>는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저자의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룬다.
이럴 때, 어른이나 벌을 받는 아이 모두에게 해당하는데,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육체의 고통이 아니다.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일을 당했다는 생각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이다. – 60p
- 이유 없이 날아온 감시병의 매질을 견디며
강제 수용소에 있었던 우리는 막사를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126p
- 굶주림 속에서 자기 몫의 빵을 양보하는 수용소 동료들을 목격하며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 140p
- 수용소의 경험을 강연의 소재로 설명하는 자신을 상상하며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면서 정신력도 상실한다. 그는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 140p
대체로 이런 현상은 아침에 수감자가 옷 입고 세수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연병장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간청과 주먹질, 위협도 효과가 없다. … 자기가 싼 배설물 위에 누워 있으려고만 한다. 세상 어떤 것으로부터도 더는 간섭받지 않고. – 141p
- '수용소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기대를 놓아버린 수용소 동료들을 목격하며
1944년 크리스마스와 1945년 새해 사이의 수용소 사망률이 급격하게 치솟았다고 한다. 감염병이 돌아서도, 추위 때문도 아니었다. 크리스마스에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끝내 종전 소식을 접하지 못한 죄수들의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대거 사망한 것이다.
한편, 아주 사소한 행동을 통해 얼마 살지 못할 사람을 판단하던 에피소드도 있다. 수용소에서 담배는 화폐처럼 쓰였으며, 담배 한 개비면 수프 한 그릇과 바꿀 수 있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살 의지가 있는 사람은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수프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동료가 아껴둔 담배를 꺼내서 피우기 시작하면, 그가 48시간 안에 죽겠거니 생각했다고 하며 실제로 곧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착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집단, 혹은 악한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순전히 한 부류’의 사람들로만 구성된 집단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 159p
- 동료 수감자인 '카포(감시원)'가 나치보다 더 악랄하게 동료들을 학대하는 광경을 목격하며
흔히 나치는 가해자, 유대인 수용자는 피해자로 나누어 홀로코스트를 바라보지만, 실제로 카포(유대인 수용자 중 감시원으로 선발된 인원)가 나치 대원보다 더 악랄하게 수감자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세상에는 성자와 악마 두 부류의 인간만 존재하며 이러한 부류는 국적이나 인종, 계급을 불문하고 모든 집단에 섞여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2부는 의미치료에 대해 다룬다.
위에서 서술했듯 저자는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 그리고 삶의 의미를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존적 공허를 마주한 인간에게 삶의 의미인 Logos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Logotherapy라는 심리치료법을 고안하였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구체적이며, 삶이 우리에게 던져 준 과제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 145p
인간은 삶의 추상적인 의미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특정한 일과 사명이 있다. – 190p
저자는 <내 인생의 의미는 뭐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따위의 추상적인 질문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정확히는 질문의 방향이 잘못 되었다고 주장한다. 위 추상적인 질문의 경우 내가 삶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다. 반면 저자는 반대로 삶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우리는 그에 대해 대답해야 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이때 대답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즉, 주어진 상황(그것이 시련이든 과제이든)에 대해 내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함으로써 대답을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 의지로 선택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 184p
이는 에피쿠로스 학파가 강조한 아타락시아와는 정면으로 충돌되는 주장인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
( 에피쿠로스는 마음의 평정을 깨뜨리는 모든 종류의 정신적 동요나 고통을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즉 고통의 회피로부터 쾌락을 추구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소위 자아실현이라는 목표는 결코 실현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자아실현을 갈구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자아실현은 자기초월의 부수적인 결과로서만 얻어진다는 말이다. – 193.p
행복이나 자아실현은 목표가 아닌 결과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영어를 공부한다고 할 때, '영어를 잘하는 멋진 나'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며, 외국인과 소통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를 하면 영어 실력(자아실현)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는 의미인 듯하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실존 철학자들이 가르친 대로 삶의 무의미함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절대적인 의미를 합리적으로 터득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 205p
삶에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궁극적인 의미가 존재하나, 단지 우리가 그것을 모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해당 문장은 다소 종교적으로 느껴져 와닿지 않았다.
사실 마약 문제는 이보다 더 보편적인 집단 현상, 즉 현대 산업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인 실존적 욕구의 좌절에서 나오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의 일면을 반영하는 것이다 – 237p
저자는 인간에게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가 좌절되면 실존적 공허가 생기며, 쾌락으로 빈자리를 채우려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나 또한 공감되는 내용이었다. 다만 하나 더 덧붙이자면, 단순히 공허를 채우기 위한 쾌락으로 마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식을 화학적으로 꺼버리기 위해(회피) 마약에 손을 대는 것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또한 넓은 범위에서 쾌락일 수도 있겠다.)
<비극속에서의 낙관>을 주제로 한 3부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매우 짧으므로 생략한다!
3. 느낀점: 애매하게 아는게 병이다!
[일반인 단계]
이들은 삶의 본질에 대해 굳이 의심하지 않는다. 사회가 좋다고 말하는 가치들(화목한 가정, 안정적인 직장, 맛있는 음식 등)이 삶의 정답이라고 굳게 믿는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외로우면 사람을 만난다. 태어난 김에 즐겁게 살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몫을 다 하는 것에서 충분한 만족감을 얻는다.
[철학자 단계]
반면 이 책의 저자인 빅터 프랭클, 혹은 시지프 신화1를 쓴 카뮈와 같은 현자들은 실존적 허무를 마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쾌락이 영원하지 않고, 성취 뒤에는 권태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세상에 본질적인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어찌되었든 인간 삶의 종착지는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무의미한 세상에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다.
나는?
삶에 대한 환상이 과거에는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찌 되었든 환상은 깨졌고 실존적 공허함과 허무를 마주했다!
즉, [일반인 단계]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초월적인 태도로 삶을 긍정하지도 못한다!
[철학자 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이 세상이 거대한 감옥처럼 느껴지면서도, 남들이 나보다 더 비싸고 질 좋은 철창안에 갇혀 있는 걸 보면 부러워한다.
해탈한 척 나는 돈이고 명예고 관심 없다고 말하지도 못하면서, 돈이나 명예를 좇으며 이게 행복이지! 하지도 못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저자가 말하는 삶의 의미2가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한편 인간이 미치지 않기 위해서는 저자가 말하는 삶의 의미를 추구해야한다는 것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삶의 의미, 즉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아 헤매는 일이 결국 실존적 공허로 이어진다는 진단은 나 또한 경험적으로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4. 마치며
나의 식견이 부족하여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어 조심스러우나, 만약 대단한 깨달음이나 즉각적인 위로 바라고 이 책을 읽으려 한다면 추천하진 않는다.
다만, 1부에서 아우슈비츠에서의 삶에 대해서 굉장히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읽어도 좋을 듯하다. 해당 내용을 읽으며 인간의 적응력은 대체 어디까지인지... 경외심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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